첫 번째 이야기: 무참히 잘려진 은행나무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세 그루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던 우리 동네 교회 앞이다.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암나무여서, 작년 가을에 신나게 은행을 털었는데, 올 봄에 그 옆을 지나다 보니 세 그루의 은행나무들이 몽땅 다 잘려져 그루터기만 남아있고, 그 옆으로 조그만 dogwood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은행나무를 대신하는 것인가보다.
은행나무는 좌웅이체이며, 암그루가 열매를 맺게까지, 15년에서 20년이나 걸린다고 그런다. 유실수 중에서도 유년기가 상당히 긴 편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자라 온 은행나무를 싹둑 잘라버리다니, 은행나무를 좋아하는 한국사람인 나나 남편에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면 문제 많은 암그루 한 그루만 베어버리지, 왜 다른 숫나무 두 그루까지 몽땅 다 베어버렸을까? 울 남편의 그럴듯한 해석이, 아마 나무를 베라고 고용한 사람들은 열매가 없어진 봄이라 어느 것이 암나무인지, 숫나무인지 구별할 수 없어서 그냥 몽땅 다 베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다. 내참… 그게 사실이라면, 잔디밭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면 암나무 밑엔 떨어져서 썩은 은행알들이 조금씩 보일텐데… 이유야 어찌되었던, 이렇게 사라진 은행나무들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그건 그렇고, 우린 이제 어디 가서 은행을 털어야 하나?…. ㅠ.ㅜ
두 번 째 이야기: 은행알 줍기
작년부터 슬슬 은행맛을 들이기 시작한 남편과 나의 고민은 도데체 올핸 어디 가서 은행을 줏을까 였다. 그래서 미쳤다하고 시작한 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학가 주변에서 은행나무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의외로 대학캠퍼스내에는 은행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름부터 은행나무가 눈에 띄기만 하면, 은행열매가 달려 있나 없나 올려다 보기를 무려 20번도 더 한 것 같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을 땐, 어디에 암나무가 몇그루 있는지 분포도 조사가 모두 끝나있었다. 우리 이정도면 상받을만 하지 않을까? ㅎㅎㅎ
10월이 되었을 땐, 암나무 밑에 떨어진 은행알들을 모아서 까는 것이 일이었다. 다행이 토요일 아침 일찍이라 캠퍼스가 쥐죽은듯이 고요해서 창피할 일은 없었지만, 가끔씩 나이든 중국인 부부들이 우리들 처럼 은행알들을 줏으러 와서, 중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중국말을 못알아 듣든지 말든지, 뭐라고 쏼라 쏼라 한참을 중얼거리고 가는 걸 보면, 분명 우리에게 무슨 도움되는 제안을 하는 것 같은데. 보통은 이런 중국인 노부부들을 모시고 온 아들이나 딸로 추정되는 사람은 창피하다는 듯이 저 멀리에 주차를 하고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우린 오히려 은행과육들을 캠퍼스에서 없애주는 것이 캠퍼스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은데… 어쨌든 전세계에서 은행알 맛을 아는 것은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들 뿐인 것 같다. 가끔씩 산책나왔던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뭐하는지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우리 행동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였다.
주로 토요일 아침에 은행알들을 봉지에 주어서, 새로 산 땅의 시냇가에 가서 장갑낀 손으로 까서, 깨끗이 알들을 씻어서 가져왔다. 과육들은 처음엔 땅에 묻었는데, 나중엔 얄미운 Groundhog들이 여기 저기 파놓은 땅굴에다가 살며시 밀어 넣어주면서… 니네들 땅임자를 잘못만났지… 빨리 멀리 이사가던지 아니면 앞으로 고생좀 할것이다의 예고편을 시작했다. ㅎㅎㅎ
세 번 째 이야기: 새로 알게 된 은행 알러지
남편과 은행알을 줏으러 다니던 중, 난 내 팔에 빨간 rash (조그만 부스럼)들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rash들이 번져 나가는 것이랑 근지러운 것이 Poison Ivy rash랑 비슷해서, 그런줄 알았다. 왜냐하면 새로 산 땅에 Poison Ivy들이 많아서, 지난 여름에 rash가 크게 생긴 적이 있었다. 다행히 약품파는 곳에 가면, 의사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Poison Ivy Rash 연고들이 많아서, 바르면 잘 났기 때문에 그리 큰 고생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이번에도 그려러니 했다. 만지거나 스친 기억은 특별하게 없지만, 워낙 내 손버릇이 부잡스러운지라… 나도 모르게 그얘들을 만졌나? 생각하면서, Poison Ivy rash용 연고를 부지런히 발라 주었다. 하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고, 더 심하게 번지기만 했다. 거기다가 근지러워서 잠자면서 무의식중에 긁어데다보니…흉터가 생길 것을 걱정해야했다.
의사를 봐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혹시 내가 은행과육을 싸고 있는 하얀 가루같은 물질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구글을 해보니, 아뿔싸, 은행열매의 껍질에 하얗게 붙어 있는 가루가 정말로 어떤 사람들에게 Poison Ivy랑 비슷한 알러지를 일으키기도 한단다. 장갑 낀 손으로 만졌건만, 씻을 때 물이 손목 근처의 옷에 스며들어가서 이런 알러지 반응이 나오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이번엔 굳이 Poison Ivy 용 연고가 아닌, 칼라드릴 같이 광범위하게 듣는 알러지 연고를 사서 발랐더니, 금방 효과가 있어서, 다행히 의사를 보러가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다가 은행알 까거나 씻는 일은 이제 남편이 다하고 난 근처도 안갔다. 거의 2도 화상을 입은 것 같던 두 팔등이, 3주가 지난 지금은 이젠 알아보지도 못하게 거의 나았다. 온갖 기관지 알러지로 고생하는 남편은 의외로 나와같은 알러지는 없는 걸로 판명이 났다.
혹시나 우리처럼 은행알 구어먹는 재미에 빠지신 분들…그리고 앞으로 그럴지도 모르실 분들…절대로 절대로 맨손으로 만지지 마시라. 재미있는 것은, 다행이 은행알을 먹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너무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어쩔지 모르겠으나, 매일 밤 7알 정도 먹는데, 전혀 다른 이상은 없다. 그거나마 얼마나 다행인지…쫄깃 쫄깃 쌉싸름한 은행알을 알러지 때문에 못먹게 된다면 그 것이 내겐 너무나 큰 불행일테니…
네 번 째 이야기:남편의 은행나무 번식시키기
은행알을 줍는 것으론 성이 안찼는지, 남편이 드디어 심각하게 은행나무를 번식시키자고 제안을 했다. 난 어느 세월에 은행나무를 심어서 은행알을 따냐고, 그 제안에 콧방귀를 흥 뀌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물러설 기색이 전혀없이, 알밤 숨기는 다람쥐처럼 내 화분들에 은행알을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서, 은행알이 제법 큰 암나무들의 가지들을 한 둘 씩 모아와서 Rooting Medium 잔뜩 바르고 흙에 꽂기 시작했다.
츕지 않을 땐 차고에 두더니,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어느새 사용않고 빨래 건조대로 가끔 사용하는 내 트레이드밀 위에 떡하니 가져다 놓았다. 은행나무 가지가 뿌리를 내리는데 거의 2달 걸린단다. 아마도 내년 봄이 되어서나, 가지에서 새 싹이 돋으면 뿌리가 잘 내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식물들 기르는 것에 별루 관심을 안보이던 남편인데, 무슨 일인지 은행나무엔 지극정성이다. 전생에 무슨 다람쥐였나? 웃으면서 남편의 은행나무 기르기가 성공하길 염원해본다.
저도 은행나무에 많은 추억이 있답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살았던 동네가 서울대학병원 근처인 명륜동 이였는데 (지금은 '대학로길'로 부르구요) 그때는 서울대병원 근처가 온통 은행나무길 이였어요. 제가 어릴때부터 천식으로 고생를 좀 했었는데 은행이 천식에 아주 좋다는 말을 듣고 엄마랑 매년 은행을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가 맨손으로 은행 만지면 옻 옮는다고 조심하라고 그러셔 고무장갑 끼고 줏으러 다녔던 기억도 나구요.. 냄새는 고약했지만 바로 까서 기름 두르고 살짝 볶아서 맛소금 조금 뿌려서 먹으면 쫀득하고 짭짜름한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몇년전 한국 갔었을때 가보니 그 많던 은행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주 복잡한 거리가 됐더라구요...-.-
ReplyDelete나물사랑님, '대학로길'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러고보니, 님의 엄마가 말하던 은행 옻을 제가 옮았나봐요. 한 3주 고생 많이 했어요. 그래도 은행을 까서 먹을 때마다 헤헤 거리면서 먹는 것엔 알러지가 없어서 진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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