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 든든히 해서 배도 뽀땃하고, 기분도 좋아서, 오늘 날씨가 어떤가 싶어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 보니, 궂은 겨울비만 철철 내리고 있다. 주말에 날씨가 좋을거라고 그랬는데, 일기예보가 또 엇나가나보다. 에잉, 하루종일 텃밭에 나가서 일을 좀 해볼까 벼루고 있었는데, 비때문에 도루아미타불이 된 것 같다. 계획이 어긋나는 바람에, 할 일을 잃어버린 난, 빈둥빈둥 거실을 왔다 갔다, 신문 만화를 읽다가, 그것도 심심해서, 화분에 물을 주고 났는데도, 날씨때문에 뒤틀어진 기분이 안풀렸다. 그래서 CD들을 뒤적 뒤적 거리다가 한국에서 가져왔던 20년 된 송창식씨의 노래 CD 세 개를 찾아내서는, 오디오에 몽땅 걸어놓고 흥얼흥얼 따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젊었을 땐 난 송창식씨의 노래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다. 왜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든 지금은 무척 좋다. 가사들이 좋고, 음이 좋다. 세 개의 CD 속에 든 노래들을 몽땅 다 들어도 결코 지겹지 않게 느낄 정도로. 어쩌면, 내가 송창식씨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다른 이유가, 그의 노래속엔 내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난 대학다닐 때, ‘우리는’ 이라는 노래가사 속에서 처럼, 빛이 없는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했고, ‘내나라 내겨레’ 를 따라 부르며,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우리가 간직함이 옳다고 생각했으며 나만의 작으마한 나라사랑, 민족사랑, 내 이상의 남성상, 뭐 그런 것들을 싫든 좋든 키워왔었나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난 요즘 노래 가사들을 그리 쉬 이해하기가 힘들다. 17살 난 아들이 다운로드해서 열심히 듣고 있는 노래들의 가사들을 듣노라면 더더욱 세대차이와 문화차이를 느낄 정도로 요즘 애들의 정서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송창식씨의 맨처음 고백이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맨 처음 고백이 몹씨도 힘들어서 1년 2년 그냥 흘려보내는 그런 정서를 이해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린 대단히 오래된 고리적 사람인가벼 싶다.
노래를 따라하면서, 흥이 오를대로 오른 난, 그것도 성에 안차서, 잠옷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원래 타고난 몸치다. 그래서 내가 출 수 있는 춤이란, 그저 음에 몸을 맡기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리듯, 그렇게 흐느적 흐느적 음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내가 출 수 있는 춤의 다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감히 춤을 추지 못한다. 안 추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워서 못 추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 집 거실에서 내 흥에 겨워서 춤을 춘다는데, 뭐 그런 것들이 대수이겠는가. 거기다가 송창식씨의 옛 노래들은 별루 빠른 템포가 없어서, 흐느적 스타일의 내 춤에 제격이기도 하다. 지나가던 아들이랑 남편도 한 번 씩 흘깃 쳐다보고는 그냥 간다. 어쩔 땐 혼자 흥에 겨워 주체를 못하는 나를 괜시리 건들여보고 싶은 남편이 ‘세수나 했냐” 물어서 흥을 깨기도 하지만, 겨울비 내리는 어느 일요일 아침에, 노래속에, 춤 속에, 제 흥에 겨워, 옛시절의 먼 추억속에 빠져들어 홍야 홍야 거리는 나의 이 순간이 문득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이런 행복은 바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Do it yourself 스타일의 작은 행복이니, 남편! 괜시리 행복해 하는 사람 무드 깨지 말고, 그냥 놔둬, 중얼거려본다.
I started to smile when I imagined you having fun by dancing in your own world with your own music:).....
ReplyDeletegardengal nim, I am pretty sure it is not a pretty picture...but I enjoy to dance.... :) :)
ReplyDeleteGeni nim, It was a WONDERFUL picture!:)
ReplyDeleteI hope you will invite me to your next performance.:)
gardengal nim, if you think so....., I would love to do that..... :)
ReplyDelete절로 흐믓한 웃음을 짓게 하는 광경이군요. ^^
ReplyDelete저도 그 옛날 가수들의 음반이 있나 좀 찾아 보렵니다. 역시 비나 와야지 이렇게 가든 외적인 글을 올리시게 되는군요. 그래야 저같이 가드닝에 문외한인 사람도 좀 끼어 들 수 있지요. ㅋ
oldman님, 늘 그렇듯이 제 수다는 늘 야채나 나물이야기뿐이니니... 죄송해요.... :) 그나저나 구정이 곧이어서, 다시 한 번 새해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하시길 바랍니다!!!!
ReplyDelete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송창식의 '우리는'을 지금 흥얼거리고 있네요~^^ 제가 기억하는 송창식 노래는 우리는, 참새의하루, 가나다라마바사? ^^ 지난주에 이곳에도 비가 내리고 날씨가 꿀꿀한 날이 있었는데 저도 진한 커피를 마시며 김광석 노래를 듣고 행복해 했었답니다. ^^ 옛날에 저는 콘서트도 여러번 갔던 김광석 팬 이였거든요..
ReplyDelete그나저나 Geni님 남편분 정말 자상하시네요!.. 남편이 만들어주는 토스트랑 커피... 어떤 맛이죠?-.-
나물사랑님,저도 김광석씨 노래를 좋아했더랬어요. 그러고보면 노래취향도 비스꼬롬...ㅎㅎㅎ 비가 오면 왜그리 꿀꿀한지...이런 날 남편이 만들어주는 토스트랑 커피는 천상의 맛! 그래서 남편보고 자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좀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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