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5, 2010

큰엄마가 그리워지네요.

우리 큰엄마는 19 나이에 큰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는데, 시절엔 19 새색시는 늙은 측에 속했다고 그런다. 생각엔 큰엄마는 힘이 좋으신 여장부가 아니었나 싶다. 시집오고 얼마 안있어서, 수확이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없이 한가마니를 머리에 가볍게 이시고 동네길을 걸어서 집에 가지고 오셨다고 한다.  글만 읽으시는 큰아버지가 농사일에 관심이 없으셔서 혼자서 애태우시다가 그러신것 같다. 그런데, 다워야할 애띤 새색시가 이렇게 한가마를 버쩍 버쩍 머리에 지고 다닌 것이 동네분들 눈에 애사롭지 못하게 비쳤고, 이야기가 드디어 할머니 귀에까지 들어 갔는데, 할머니는 그것이 무척 맘에 드시지 않으셨나보다. 섬세하셨던 할머니에겐 힘이 것이랑 무식이랑 동격이라고 생각되셨거나, 새며느리가 집안 망신을 시켰다고 생각되셨었나보다.  할머니가 원래 좋은 것과 싫어하신 것에 대한 구분이 확실했고, 꽁하신데가 있으셔서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오래 갔는데, 큰엄마의 이런 인상들이 분을 고생스럽게 하시지 않았나 싶다.  거기다 큰엄마의 고된 시집살이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었던 것은, 몰락해가는 가운을 며느리가 잘못 들어 와서 그랬다는 이유 아닌 이유였다.

그에 비해 엄마는 엄마의 작은 동서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가 워낙 너무 많이 나고 막내 아들의 부인이다가 보니, 그리고 아빠가 일찌 감찌 직장을 잡아서 바로 옆동네로 이사를 바람에, 큰엄마가 밟았던 호된 시집살이의 전철을 용케 피하셨던 같다.  거기다가 엄마 또한 외가에서 나이 터울이 아주 심한 늦동이 막내딸로 자란 지라 큰엄마나 할머니가 애초에 일을 다부지게 것이라곤 기대조차 안하셨고, 아빠가 엄마편삭을 심하게 들어서 일을 시킬 생각조차도 못하셨던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순종적이 큰엄마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구박을 마디 없이 견뎌내셨지만 엄마는 할머니의 잔소리나 시집살이가 도가 지나치시다고 여기시면 가감히 할머니에게 따지시는 성격이셔서한마디로 시집살이 시키기가 힘드셨던 같기도 하다.  

큰엄마는 종손 며느리답게 일을 아주 하셨고, 크고 작은 경조사를 불평 한마디 없이 모두 치러냈다. 내가 어릴 때는 거의 제사가 있었던 같고, 치러야 명절도 많았다.  거기다가 어른들 생신들까지.  기억으론 고조할아버지 생신까지도 챙기셨던 같다.  큰엄마는 식구들 많은 우리집 생일 날들에도 오셔서 말없이 부엌 한켠에서 음식을 만드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큰엄마가 놀고 있는 것을 적이 없다. 많은 밭일에다가 도와 사람 하나 없는 집안 일들에 한시도 쉴새없이 이른 새볔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하셨다. 텔레비젼 보느라 낄낄 거리는 옆에서 바구니 가득 담긴 바느질거리에 쏟아지는 졸음에 꾸벅 꾸벅 조시면서도 일을 하셨다.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묵묵히 많은 일들과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 내실수 있는 도통 이해가 안되셨다고 그러셨다.  어린 내게도, 졸움을 참고 일을 하시는 곰스럽기만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되었으니.  그런데도 큰엄마는 불평을 들어줄 귀가 없어서인지 수가 워낙 없으셔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참는 것이 이럭이 나셨는지, 그야말로 불평같은 것을 줄도 모르셨다. 나도 우리에게 그렇게 잘해주시고 그리고 자상하셨던 할머니가 어떻게 큰엄마에게 그리 고된 시집살이를 시키셨는지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각엔, 큰엄마 일복 많은 것도, 할머니의 시집살이도, 아버지의 무관심도, 모두 팔자라 생각하셨던 같고 대접받으실 조차도 기대하시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삶을 견디시며 사셨던 같다. 어쩌면 큰엄마의 친정집 교육이 이러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큰엄마가 친정집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친정집 나들이를 하시거나 친정집 식구들이 집에 오는 조차도 적이 없다.   엄마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정도로 실천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큰엄마가 칠거지악을 포함한 사대 교육을 엄격하게 받으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말수가 적고, 힘들어도 불평할 모르고, 아파도 아프다고 표현하실 줄 몰랐던 엄마였지만, 아무도 그런 큰엄마를 이해해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이해를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울 큰엄마는 모르셨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엄마가 불쌍하시다고 그러셨고, 나역시 그런 고된 삶을 버텨내신 엄마가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우리집에선 이름하야 고명딸’, 걸쳐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딸이였다. 하지만 명칭의 뒷면엔, 외로움이 짙게 깔려있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아들만 둘 가진 큰엄마는 딸이 없으셔서 그랬는지 나를 딸처럼 해주셨다.  어릴적엔 말수가 워낙 적었던 나는, 같이 말수가 없었던 큰엄마가 무척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큰집에 가면 큰엄마를 강아지처럼 졸졸 쫒아다녔다.  음식 만드시느라 아무리 정신이 없으셔도, 군불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노는 나에게, 먹을 걸 챙겨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던 울 큰엄마. 고집부리다가 엄마에게 야단맞고 울고 있으면, 왜그랬냐고 내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시던 큰엄마. 등 긁어주시는 손끝이 너무 갈라져서 등 아프다고 쫑알되면 그냥 웃으시던 큰엄마. 잠이 안와서 이야기해달라고 조르면, 없는 말솜씨로 뭔가를 종알거려 날 잠재워 주시던 큰엄마.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이젠 기억이 없다. 대학교 다닐려고 서울로 떠나던 날, 내 손을 꼭잡고 많이 보고 싶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이던 큰엄마. 난 가끔 내가 만든 나물들 속에서 큰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그 음식맛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큰엄마, 경희가 큰엄마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답니다. 눈감으면 아스라니 떠오르는 기억 저편의 제 고향 산천 속엔, 할머니도, 큰엄마도 있어요. 숱적은 머리를 단정히 빚어 쪽지시고, 거무틱틱한 치마저고리 입으시고 숙주나물 간을 보거나, 솥뚜껑 들어서 김오른 밥을 뒤적이시고, 막걸리 맛이 들었나 손가락으로 찍어드시다가 얼굴 빨개지시던 모습이 떠오를 적마다 큰엄마가 몹시도 보고 싶습니다

8 comments:

  1. It made me cry...... What a beautiful tribute to your 큰엄마!

    I wish many happiness for your 큰엄마 and hope she is taking it eas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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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rdengal 님, 저도 큰엄마를 생각하면 늘 서러운 느낌이 들어요. 요즘 큰엄마 생각이 간절한 걸 보면 아마도 큰엄마 제사가 가까워 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젠 좋으신 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계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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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orry, I didn't know she has passed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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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괜찮아요...제 기억속에선 늘 살아계신듯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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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경희님 미씨에서 찾아서 들어 왔네요.
    혹시 전에 저에게 근대씨를 나누어 주신 분 아니신가 싶어서. 제가 상추씨를 여러분 나누어 드리고 남은 것 뿌렸는데 싹이 안나서 안타까운 마음에 여기 저기 한국 상추씨를 구할데를 찾다가 혹시 나누어 주실 수 있나 글을 남겨 봅니다. 제가 반송 봉투를 득달같이 보낼께요. 한국 상추씨좀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농사를 잘 지으시는데 땅 거름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금년에 깻잎 고추 다 안되고 호박이랑 파만 먹을 만큼 나와서 겨울에 얼갈이 배추랑 상추를 심어보려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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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미씨에서 쪽지로 영어 성함과 주소를 알려주세요. 근데 어떤 한국 상추씨를 심고 싶으신건가요? 그것도 같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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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님의 큰엄마랑 저희 엄마가 참 많이 비슷하세요... 글을 읽으면서 전 엄마생각에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모진 욕설과 무식하고 힘세다는 말... 할머니께서 저희 엄마한테 늘 무시하면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아빠라도 엄마편이 되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빠랑 할머니는 언제나 한편이 되어서 엄마를 무시했었습니다. 소리없이 부뚜막에 홀로 앉아서 우시던 엄마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머리도 하얗게 백발이 되셨고 젊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인지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보이시는 울엄마... 5년전 한국에 갔었을때 너무 빨리 늙어버리신 엄마 모습에 많이 놀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젊어서부터 배우지 못한게 너무 한이 된다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검정고시 학원들 등록해 드리고 왔었는데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셔서 지금은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계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울엄마가 너무도 자랑 스럽습니다. 가까이 계시면 업어드리고 큰 잔치라도 했었을텐데...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전화할때마다 제 걱정에 엄마는 또 우십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라고 했는데 늙은 부모님 홀로 남겨두고 손주 재롱도 못보여 드리 전 불효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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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나물사랑님 어머니 이야기가 어쩜 그리 울 큰엄마랑 비슷할까요? 만나보진 못했지만, 전 나물사랑님의 어머니가 정말 존경스럽니다. 나이들어서도 그리 배움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시다니.... 많이 많이 효도하세요. 정말 이럴땐 물건너서 멀리 사는 것이 너무 한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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