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09, 2010

쌓인 눈이 한 고자질

아들이 이상한 발자국이 울타리 옆을 타고 쭉 나있다고 찍어온 사진입니다. 도데체 어떤 동물의 발자국일까요?

나중에 아들이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더니, 토끼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서 달아나더랍니다.

토끼 발자국을 잘 따라 다니다 보니, 우리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것이 보입니다. 차고 앞의 콩크리트 윗쪽으로 약간 떠 있는 곳이 있는데,쪼로록 그 구멍으로 토끼 발자국이 나있습니다. 그러니 이 토끼가 제 허락도 없이 우리집 뒷야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이눔의 토끼가….내 뒷야드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덤보를 연모하여…..드나들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아니면…..
그러다, 올 겨울 내내 잘 자라고 있는 내시금치밭을 작살 낸 짐승이 어쩌면 슬러그들이 아니고 이 야생토끼가 먹고 있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슬러그들이라고 짐작하고 온갖 갖은 복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슬러그들이 한 짓으로만 돌리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첫 번 째, 주말 아침마다 기습검문을 했지만, 슬러그들을 한 마라도 못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도 어떻게 이 슬러그들이 내 검문에 걸리지 않는지 이상해 하고 있었답니다. 두 번 째는 슬러그 피해는 슬러그가 숨어 있는 지역에 집중되어있는 것이 보통인데, 피해가 시금치 밭 전체에 고루 퍼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 째는 , 워낙 몇 년 전에 걸쳐서 슬러그들을 추적해서 작살을 낸 결과로, 지난 해 내내 제 텃밭에선 슬러그 피해가 별루 없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작년내내 슬러그들이 동면도 안하고 내 시금치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슬러그들은 연체동물이어서, 추위에 약합니다. 조그만 추워져도 땅속이나 나뭇가지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겨울을 나는 것이 보통이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당히 큰 시금치잎들이 무자비하게 뚝뚝 따먹혔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슬러그들이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랍니다. 이런 것들을 곰곰히 따져 보니 슬러그들이 아니라 야생토끼가 들어와서 제 시금치를 야금야금 먹었나봅니다. 왜 이런 것들을 그 전에는 생각못하고 무조건 슬러그들이 한 짓이라고 굳게 믿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야생토끼는 자기의 정체가 노출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왜 야생토끼가 근대같은 다른 야채들은 건들이지 않고 시금치만 먹었느냐가 아직도 궁금하지만, 야생토끼! 이제 No more free spinach salad for you! 이 말썽장이 야생토끼 때문에 올 겨울내내 시금치 맛을 한 번도 못본 것이 많이 억울하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온 눈들이 야생토끼의 앙큼한 짓을 제게 고자질한 것 같습니다. 살다보니 별 일도…Thank you, snow! ㅎㅎㅎㅎ

4 comments:

  1. I can almost hear the rabbit telling Dumbo "I got busted and can't come to visit you any more!"

    Poor slugs! They got accused for something they didn't do. It just shows that one is innocent until proven gui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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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 really like your first version of story much better than the second one. In my humble opinion, slugs are always guilty regardless of their legal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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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범인 잡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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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oldman님, 범인은 알아냈는데, 아직 잡지는 못했어요. 어찌나 빠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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