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1, 2009

울밑이 아닌 잔디밭에 핀 봉숭아

저희집엔 지금 빨간 봉숭아꽃들이 한창입니다. 전 어렸을 때 봉숭아랑 봉선화가 서로 다른 화초인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같은 이름인 걸 알고도 한참 동안 헷갈려했어요. 왜 봉숭아를 봉선화라고 불렀을까요? 소나무랑 솔나무 같은 것인가 쉽기도 합니다. 한글이름과 한자어로 부르는 이름의 관계. 왠일인지 전 봉선화란 말보단 봉숭아란 촌스런 이름이 훨씬 정감이 가서 좋습니다.

봉숭아만큼 한국인의 정서가 가득 담긴 화초들도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씨가 스스로 떨어져서 자라는, 제 자리를 지킬 줄 아는 그런 화초이기도 이니까요. 2년 전에 Home Depot에 갔다가 화초 섹션에 같이 놓여있던 봉숭아 씨를 보았습니다. 어찌나 신기했는지. 그래서 아주 당연히~ 사왔지요.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워낙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잘 자라지를 못했어요. 고집스럽게 2년 시도를 해보다가 매일 물 주는 것이 너무 힘들어, 여기서는 아닌가벼 싶어서 포기하고 올해는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몇 년 동안 그 심하던 가뭄이 해갈이 된건지 올 여름에는 텃밭에 물을 줄 필요도 없이 비가 열심히 와주었습니다. 봉숭아를 심었으면 진짜 잘 자랐을텐데 하고 후회를 했지요. 아무래도 이런 제 맘을 훔쳐 보았나 봅니다. 작년에 씨들이 떨어졌는지 늦 여름에 보니 잔디밭 가장자리에서 봉숭아들이 아주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찌나 기쁘던지, 그날로 그 쪽은 잔디깎기 절대 금지 구역으로 지정을 했지요.

작년에 심었던 봉숭아 꽃들은 하얀색, 분홍색, 붉은색들이었는데, 올해는 붉은색 홑꽃들만 피었습니다. 하얀색과 분홍색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지레밭 같은 뒷 야드 잔디 깎느라고 고생하는 우리 집 두 남정네들은 핑키 발톱에다가 물들여 줄까 싶지만 게이같아 보이는 것은 몽땅 다 싫어하는 아들인고로 포기하고 내 새끼 손톱만이라도 물을 들여볼까 합니다. 그러다가 첫사랑이 이루어 지면 어쩐다지요? ㅎㅎ

봉숭아는 Balsam Camilla, Garden Balsam, Impatience balsamia Camilla, 등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데, 한국에선 touch-me-not 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구요. 그런데, 영어론 봉숭아 뿐만이 아니라 touch-me-not이라고 불리는 식물들이 너무 많아요.

4 comments:

  1. 어렸을 적 광주 외가에 가면 그 길목 입구에 나란히 피어있던 채송화, 봉숭아..그리고 토마토, 가지, 깻잎들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 봉숭아꽃은 유난히 청승맞을 정도로 예쁘게 피어
    나중에는 할머니 손에 붙들리어 평상에서
    밤 늦도록 밤잠 설쳐가며
    손에 봉숭아 물들이던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할머니가 엄청 늙으신 것으로 착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우리도 곧 그 나이에 머지 않아 도달할 것 같아요~~~

    덕분에 좋은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u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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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래전에 한국 코미디중에 하나 '봉숭아 학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읍니다. 한참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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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ung hee 님, 혹시 전라도 광주를 말하시는 건가요?

    진짜 시간이 빨리가죠? 아직도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은 그렇지 않으니.... 아마도 이런 저런 옛날 생각들 때문인지 모두들 봉숭아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스모키베어님, 저도 그 코미디 기억해요. 물론 자주 본 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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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네. 光州.^^

    su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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