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07, 2009

농부의 딸

난 10살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7 살 되던 해 우리 농네에 전기가 들어 왔었던 것 같다. 전기가 동네에 들어 오던 날 저녘, 많은 동네 사람들과 같이 사장터에 모여, 반장 아저씨가 점등식을 하는 것을 신기하게 숨 죽이며 바라보다가 집집마다 그리고 사장터에 장식하듯 걸어 놓은 백열 전구들에 환하게 불이 들어오자 신이 나서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불이 들어 오자 더 이상 앞머리 태어가며 촛불이나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그런 시절을 겪어선지 난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곧 텔레비젼이 들어 오고 나는 세상이 넓다는 것도 배웠다.

우리 아빠는 읍에 있는 작은 단위 농협의 은행원이셨다. 내 말은 우리 아빠가 농부였던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진짜 농부는 우리 엄마 였다. 우리 엄마는 5 남매를 거느리고, 논과 밭에서 일하는 지독한 농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십중 팔구는 엄마가 집에 없다. 엄마를 볼려면 동네에서 꽤 떨어진 밭이나 논에 가야만 했다. 우리집 일을 안할 때도 엄마는 동네사람들 일을 해주었다. 놉을 쓰고 수확을 하는 것도 엄마가 다 관장을 했다. 아빠는 농부로서의 일들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손에 농기구를 잡는 것도 낯설어하셨다. 실제로 엄마가 농부로 일하시는 것도 별루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다. 엄마가 농 사일을 하시는 거를 아빠는 엄마의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셨으니. 근데, 우리 엄마는 타고 난 농부였다. 좋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억척스럽게도 잘 하셨다. 가뭄이 길게 들면 하늘을 보고 안타까워 하셨고, 장마가 오면 자다가도 논에 물꼬를 틀려고 뛰어나가셨다. 얼떨결에 따라 나온 나를 밀치고 장대비를 맞으시며 물꼬를 트고 우리집 논으로 물을 보내는 동네아저씨들에게, 이러기가 어딨냐면서 따지시는 것을 보면서 난 우리 엄마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처지를 아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엄마가 일 하시는 것을 신중히 고려 안해도 엄마는 아랑곳 하시지 않았다. 난 지금도 우리엄마가 그 누구 못지 않은 100% 농부였음을 안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 우리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시골 살던 때만 해도 난 하루에 말 한마디 안하는 수줍고 말 수가 없는 애여서 선생님들이랑 부모가 모두 걱정을 했었다. 사실은 말 할 필요성을 별루 못 느껴서 안 한 것 뿐이었던것 같은데. 어쨌던, 도시 생활은 시골생활이랑 많이 달랐다. 사람들도 좀더 거칠고 각박한 듯 했다. 대신에 보고 듣는 것들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도시애들은 일딴 말이 많았다. 내가 말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난 차츰 말이 많은 도시 애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손톱 무는 버릇도 이때 생긴 것같다.

이제는 시골에 살았던 것 보다 더 긴 세월을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시골 생활도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면처럼 기억이 가물 가물 거린다. 거기다 조국을 떠나서 오랫동안 한 타향살이이에 많은 정서마저도 바뀌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도 조그만 땅이 생기니 자꾸 어릴 적 시골 집이나 오래된 한국식 정원에서 보았던 나무나 꽃들을 가꾸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텃밭을 만들어 야채를 길러 먹고 싶은 생각도 스멀 스멀 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농부의 딸로서의 기질이 나오고 있었다. 흔히 미국에서 접하는 정원보다는 우리네의 오래된 옛 정원이 주는 풍치가 더 그리워지는 것이 왠일 인지 모르겠다. 오랜 미국생활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럭저럭 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4 comments:

  1. Oh, those were good old days!!!

    I've never lived in 시골 and used to envy friends who went to 시골 to visit their grandparents or other relatives specially when they told me about having Cham Oe or watermelon on Won Doo Mak.... I had no one who lived in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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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어릴 적 고향을 떠난 뒤 딱 한 번 빼곤 다시 가 본 적이 없어요. 친정엄마 말론 너무 많이 바뀌어서 가보아도 실망할 것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옛날 우리가 살던 그런 시골은 이젠 없다구... 그러고 보면 제 어릴 적 시골은 이제 기억 저편에만 있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인가봐요. 외려 엄마가 저보다 더 안타까워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럴만도 한 것이 저보다 더 오래 그곳에 사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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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진솔한 고백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면 어딘가 누구 유명한 작가의
    글체와 많이 닮았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작가 황석영선생님의 글 솜씨와
    비슷합니다.
    입김과 분위기와 글 입담까지도...
    글을 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참 좋습니다.
    su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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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ung hee님, 황석영선생님 글체랑 분위기가 비슷하다구요?

    이상하게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불쑥불쑥 느낄 때가 있어요. 영어로 글을 쓸 때가 많은데, 영어가 아직도 서틀러서 감정표현이 원하는 대로 안되면 많이 속상해요. 그래서 언제부턴지 한글로 제 주변 이야기로 수필을 적고 있었어요. 영어 한풀이처럼요. 첫 번 째로 것이 6월 달에 올린 '슬러그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라는 글이 그 중의 하나랍니다. 한 3년 전에 적어 놓은 것인데,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잠시 올렸다가 지울려고 했는데, 재미있다고들 하셔서 그냥 놔둔 것이랍니다. 이 번이 두 번 째로 올린 제 수필이랍니다. 사실 제 주변이야기라 부끄럽고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이 블러그랑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올렸지요.

    그런데 너무 유명한 분이랑 닮았다는 소리에 부끄럽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외려 제가 고마울 따름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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