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 2009

산타 할아버지가 왜 엄마에게 반지를 선물했을까?

거의 9년 전에 적어 놓은 글인데,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서 갑자기 생각나서...

[산타 할아버지가 왜 엄마에게 반지를 선물했을까?]

미국에 온 지 10년 만에 드디어 우리집을 장만했다. 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겐, 조그맣지만 새로 산 우리 집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낯설기도 했다. 그렇게 큰 집이 아닌데도, 아파트 청소에만 익숙하던 나에겐,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온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음식 준비하는 것 보다도 집 청소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이 것 저 것 손보는 것도 장난아니게 돈이 들었다. 어쩔 땐 그냥 아파트 사는 것이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방비가 장난이 아니어서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도 추어, 한방에 전기난로 갖다 놓고 세 식구가 모두 한 곳에서 생활을 하며 우리가 왜 그 편한 아파트를 포기하고 집을 사서 이사왔는 지를 돼새기곤 했다. 아파트 살땐 난방비가 월세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마냥 따뜻하게 하고 살았는데. 굳이 좋은 것이 있다면, 세탁을 하려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 애가 뛰어다녀도 야단 칠 필요가 없다는 것, 눈이 온 다음 날 차 위에 눈을 치우느라 꽁꽁 손을 불어가며 고생안해도 된다는 것들이었다.

집을 사서 이사 온 뒤 알게된 커다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난 오랫동안 우리 애가 산타 할아버지를 안 믿는다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 부터 그런 내색을 안 했을 뿐 만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시러 온다고 해도 아무 반응을 안 보이던 애였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겐 왜 우리 애가 산타 할아버지 믿지 않는 지가 늘 수수께끼 였었다. 둘 다 일을 하는 관계로 애는 늘 미국 유아원을 다녔고, 그래서 그런지 어느 정도 미국식 사고 방식에 가까운 애였는데도 산타 할아버지만은 아니었다. 이사하고 4일 지나 성탄절이 되었다. 성탄절 하루 전 날이라고 아빠가 처음으로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불가에서 오손 도손 몰려 앉아 놀다가 밤이 늦어 잠자러 가려는데, 애가 잠깐만을 외치더니 쿠키랑 우유가 든 컵을 벽낙로 가에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기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드실거란다. 그런데, 왜 한번도 전에는 안그랬냐고 물었더니, 우리 애 하는 말이, 예전에는 맨 날 아파트에만 살아 산타 할아버지가 타고 내려 올 굴뚝이 없어서 필요가 없었단다. 난 이제서야 8 살이 된 우리애가 산타 할아버지를 안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 나름대로의 논리는 굴뚝이 없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려고 들어 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해 성탄절에는 나무도 사서 예쁘게 장식도 하고 선물도 많이 사서 애 몰래 숨겨 두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 처럼 전 날 몰래 나무 밑에 갖다 놓을려고. 이제, 애가 산타 할아버지를 믿으니까, 선물도 두 배로 사야 했다. 엄마 아빠가 주는 선물과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 작전대로 애가 갖다 놓은 쿠키랑 우유를 애 아빠가 다 먹어 치우고 나무 밑에 선물들을 가져다 놓은 뒤 잠이 들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들이어서 어색하면서도 은근히 애의 반응이 기대되어서 신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의 환성 소리에 잠이 깼다. 녀석이 제일 갖고 싶어하던 포케만 전자 게임보이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해 준거였다. 신이 나서 날뛰던 녀석이 부시시 잠깨어 나온 우리를 보더니 자랑하듯이 보여준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그런다. “근데, 왜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반지를 선물했어?” 정신없이 선물을 포장하던 남편이 깜빡하고 내게 주는 선물에다가 그냥 산타로부터라고 적어 놓은 것인데, 애가 그걸 본 거다. 우리 부부는 서로 당황해 처다보다가 시치미 뚝떼고 말 해 주었다. “응 엄마도 착한 일 많이 했다고 산타가 준 건가봐.” “근데, 왜 반지야?” “엄마가 반지 갖고 싶어 한 걸 산타 할아버지가 알았나봐.”

난 애가 더이상 질문을 안해 궁금함이 풀린 줄 알았다. 근데, 산타가 엄마에게 준 반지가 그 애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는 핵이 되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다음 해, 성탄절 날 아침 선물을 다 뜯더니, 느닷없이 이 녀석이 그러는 거다. 자기는 이제 아빠가 산타라는 걸 안다고. 그럼 왜 미리 이야기 안했느냐고 물었더니, 이 녀석 왈, ‘그럼 선물이 줄 잖아’. 9 살 되더니 느글 느글 잔머리만 느는 것 같다. 어디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자들은 3 단계의 삶을 거친다고. 어릴때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고, 커서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게되고, 더 나이가 들면 산타 할아버지가 된단다. 우리 애는 이제 두 번 째의 삶으로 들어 섰고, 우리 남편은 짧았던 세 번 째 삶에서 실직이 되었다 .

7 comments:

  1. Beautiful story! I love reading about children's innocence because they are so pure...

    My brother's children used to get a brief note and presents from santa and on christmas morning, they used to write a thank you note to santa but those days are gone now as they are in college and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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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진솔한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졌어요.
    감동과 사랑과 웃음이 들어 있어서 참 좋아요.

    su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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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크리수마수 이브엔 벽난로를 반드시 끄고 주무셔야죠. 어린시절 예배당에서 과자준다고 그 추운 겨울밤을 걸어갔던 생각이 납니다. '탄일종이 땡 땡 땡 은은하게 울린다아~~' 노래도 부르면서... 수십년 전 기억인데 아직도 생생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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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 애는 이제 이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제게 더 인상적이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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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나가다님처럼 저도 그랬죠! 교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녁에 집집마다 다니며 대문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하였죠!
    지나가다님의 노래를 이으면"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입니다.
    정말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그리고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백발이 되었고 할미가 되었으니 ....!!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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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Young님, 백발할미라니...무슨 그런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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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우아~~ Young님의 기억력이 상당하십니다. 한 오백년은 문제없으실것 같아요.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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