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09, 2010

수필-개나리와 진달래에 대한 나의 고찰

나라꽃인 무궁화보다도 한국인의 정서에 더 깊이 닿아 있는 두 꽃들이 바로 개나리와 진달래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는데 있다. 한국의 봄은 그야말로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피어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 산천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계절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꽃다운 젊은 처자가 입었던 진달래 분홍색 치마에 노란색 옷저고리에서 볼 수 있듯이 풋풋하고 싱싱한 젊음을 상징하는 우리네 의상문화에까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개나리와 진달래꽃은 긴 일제의 압박속에서 독립이라는 희망을 상징하기도 했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피고 지고 또 피어서, 독립에 대한 꺽일 수 없는 한국인의 강인한 의지를 상징했다면, 춥고 암울한 겨울의 끝을 알리며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진달래꽃은 우리의 의지가 나라 잃은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봄 같은 희망이기도 했다. 그래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비록 나라꽃은 아닐지라도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무궁화 못지 않게 우리의 정서가 깃들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나리와 진달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개나리와 진달래는 무척 고왔다. 봄만 오면, 야산들을 분홍색으로 짙게 물들이며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 가지들을 한 아름씩 꺾어서 들고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아무데고 엉덩이 깔고 질펀하니 주저 앉아서 진달래 꽃들을 따서 입에 털어 넣으면서 행복해했었다. 이렇게 야산이나 들녘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꽃들은 막상 사람들이 사는 동네안에선 드물었다. 그에비해 개나리는 동네어귀나 집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정작 야산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선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왜 진달래는 야산에 흔한 반면, 개나리는 사람들이 사는 주변에만 퍼져있을까? 어린 내 눈에도 비쳐 보이는 이런 분포의 차이가 도데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늘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태의 차이가 혹시 번식방법에서 기원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3년 전에 문득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 살면서 봄이 되면 가장 그리운 것이 진달래꽃이었다. 개나리는 미국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쉽게 사서 심을 수 있는데, 진달래를 찾아 보기가 썩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가끔 Korean Azalea라는 이름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서 보면 한국산 철쭉들이나 진달래가 아니어서 몇 번이나 실망을 했었는지... 그러다가 언젠가 캐나다에 있는 종자회사에서 진달래 씨앗을 판매한다는 글을 읽고 한 번 주문해서 심어볼까 하다가 두 가지 이유로 그만 둔 적이 있다. 첫 번 째 이유는 캐나다에 있는 회사이다보니 여러가지 서류를 작성해서 세관에 보내야 하는 번거러움이 따랐다. 두 번 째 이유는 진달래씨는 발아가 무척 까다로와서 아무 경험없이 덤벼들었다간 실패가능성이 너무 컸다. 진달래씨의 경우는 그야말로 비바람과 추위를 견뎌내는 고통을 겪어야지만 싹이 트는데, 내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진달래를 미국에서 쉽게 접하기가 힘든 이유가 바로, 가지를 꽂아서 쉽게 뿌리를 내릴 수도 없고, 씨로도 번식이 까다로운데 그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진달래랑 달리 개나리는 꽃을 피우지만 씨앗을 맺지 못한다. 개나리는 암꽃과 숫꽃이 한나무에 같이 피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진화도중에 씨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씨를 통해 멀리 번식을 할 수 없다보니, 자연상태에선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 밀려서 거의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비록 자연에선 거의 멸종상태가 되었지만, 휘묻이나 꺾꽂이를 통해서 쉽게 번식할 수 있다보니, 사람들에의해 심겨져서 동네 근처나 집뜰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달래는 씨로도 가지로도 사람들 손에 의해 쉽게 번식되지 못하기 때문에 야산에 남게 된것이고. 거기다가 사람심리가 이상해서, 야산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진달래를 굳이 뿌리채 캐다가 정원에 심을 생각은 안했을 것이고. 개나리와 진달래의 분포 차이는 바로 이 두 식물의 다른 번식 방법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전혀 다른 번식 방법 만큼이나 우리 조상들의 의식속에서도 극과 극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개나리는 ‘참’도 ‘진’도 아닌’개’라는 접두사가 붙어있다. 이 접두사는 가짜나 유사한 것들이라는 의미로, 약간의 비하감마저 준다. 왜 이런 접두사가 개나리에 붙었을까? 이에 비해 진달래는 너무도 당당하게 ‘진’이라는 접두사를 갖고 있다. 최소한 이름에서나마 진달래는 개나리에 비해 훨씬 더 고급스럽고 당당함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개나리랑 달리 진달래는 시나 시조에 자주 등장을 한다. 그리고 내가 딸이 있다면 딸애 이름으로 진달래란 이름은 고려해 볼 수도 있지만 개나리란 이름은 절대로 아니다. 이런 것을 고려해 본다면 진달래는 분명 우리네 옛 조상들로부터 개나리에 비해 더 깊은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어째서 개나리는 이런 차별을 받게되었을까?

어쩌면 이런 차별이 식용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있지만, 개나리꽃은 먹지 않는다. 물론 먹을거리들이 풍부한 현대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힘든 보리고개를 넘었을 우리 조상들에게 이것은 생사의 문제였다. 긴 겨울을 지나 먹을 것들이 떨어져 가던 보리고개 무렵, 초목근피와 산나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해야 했을 우리 조상들에겐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싶다. 개나리는 비록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한 몫 했을 지 모르지만, 진달래는 눈과 배를 모두 채워주는 즐거움을 주었으니 ‘진’이라는 접두사가 붙고도 남을 만큼 그 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만약에 개나리도 식용이 가능했다면 ‘개’나리가 아니라 ‘진나리’ 또는 ‘참나리’라는 접두사가 당당히 붙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번식이 가능한 개나리의 강한 의존성과 약한 주체성에 비해, 사람 손이 아닌 자연에 의해서만 오로지 번식이 가능했던 진달래는 신비스럼움과 경외심마저 들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힘든 보리고개에 맞춰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꽃을 달아 주는 진달래는 하늘이 내려 준 듯한 그 범상함 조차 갖고 있었으니, 개나리보다 더 우리 조상들에게 존경을 받지 않게 되었나 생각해 본다.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가는 현대인들에겐 이젠 개나리와 진달래가 단순히 봄을 알리는 정겨운 관상용 화초로만 여겨지고 있지만, 타국살이를 오래하다보니 개나리와 진달래는 단순히 화초가 아닌 내 가슴속의 고향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되고.

4 comments:

  1. I still remember how happy I was when I saw forsythias for the first time in the US because I thought forsythias grew only in Korea....Ba Bo me!:)

    And until very recently, I thought azaleas were 진달래 so I called all azaleas 진달래:(.... I wonder why it's a lot harder to distinguish between 진달래 and 철쭉 than azaleas and rhodies. Anyway, all of them make me homes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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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개나리를 미국에서 처음 보고 눈물을 글썽거렸었어요. 어쩌면 개나리의 기원은 진짜 한국일 지 몰라요. 요즘 하얀개나리로 파는 미선개나리가 한국기원이듯이요. 일제시대 때 아니면 한국전쟁때 굉장히 많은 한국 화초들이 딴 나라로 입양갔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특히 개나리처럼 이름없이 종명으로 불리는 애들은 특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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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요!!!
    이사 온 동네에서 산책하다 어느집 정원에
    개나리를 보고는 얼마나 반갑던지요.
    미국 유학 온지 7년만에요.
    그리고는 얼마 후에 홈디포에서 개나리 화분을 팔길래
    앞뒤가릴 것 없이 덜퍽 하나 사들고 돌아왔지요.
    일년이 지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인데,
    노랗게 꽃이 피어서 얼마나 신기하던지 몰라요.
    오늘도 들러 이것저것 읽어보다가 댓글하나 달고 갑니다~ :)
    올해는 이것저것 베란다 텃밭을 키워 놓아
    남편이 놀라는 눈치이니,
    내년쯤에나 진짜 한국 진달래 하나 입양할까보아요.
    돌나물 언제 뿌리 내리나 요즘 엄청 자주 들여다보며
    기다리고/보채고 있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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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진달래랑 개나리는 쌍으로 같이 있으면 더 예뻐요.
    그리고 돌나물은 뿌리를 잘 내리니....
    넘 보채시지 마시고요. ^^
    애들이 너무 스트레스 받을까봐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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