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히 일어난 주말 아침, 남편이 만들어준 커피 한 잔에 토스트로 아침을 해치웠다. 남편과 난 맞벌이 부부로, 내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남편몫이기도 하다. 물론 기분 좋은 날 아침엔, 자진해서 아침을 준비해주는 자상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난 내 남편의 이런 조그만 자상함들을 고마워한다. 물론 해주고 뽐내면, 딴 남편들도 다 그러고 산다고 몰아부치기도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딴 남편들도 다 그러고 사는데, 우리가 그걸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아침식사 든든히 해서 배도 뽀땃하고, 기분도 좋아서, 오늘 날씨가 어떤가 싶어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 보니, 궂은 겨울비만 철철 내리고 있다. 주말에 날씨가 좋을거라고 그랬는데, 일기예보가 또 엇나가나보다. 에잉, 하루종일 텃밭에 나가서 일을 좀 해볼까 벼루고 있었는데, 비때문에 도루아미타불이 된 것 같다. 계획이 어긋나는 바람에, 할 일을 잃어버린 난, 빈둥빈둥 거실을 왔다 갔다, 신문 만화를 읽다가, 그것도 심심해서, 화분에 물을 주고 났는데도, 날씨때문에 뒤틀어진 기분이 안풀렸다. 그래서 CD들을 뒤적 뒤적 거리다가 한국에서 가져왔던 20년 된 송창식씨의 노래 CD 세 개를 찾아내서는, 오디오에 몽땅 걸어놓고 흥얼흥얼 따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젊었을 땐 난 송창식씨의 노래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다. 왜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든 지금은 무척 좋다. 가사들이 좋고, 음이 좋다. 세 개의 CD 속에 든 노래들을 몽땅 다 들어도 결코 지겹지 않게 느낄 정도로. 어쩌면, 내가 송창식씨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다른 이유가, 그의 노래속엔 내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난 대학다닐 때, ‘우리는’ 이라는 노래가사 속에서 처럼, 빛이 없는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했고, ‘내나라 내겨레’ 를 따라 부르며,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우리가 간직함이 옳다고 생각했으며 나만의 작으마한 나라사랑, 민족사랑, 내 이상의 남성상, 뭐 그런 것들을 싫든 좋든 키워왔었나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난 요즘 노래 가사들을 그리 쉬 이해하기가 힘들다. 17살 난 아들이 다운로드해서 열심히 듣고 있는 노래들의 가사들을 듣노라면 더더욱 세대차이와 문화차이를 느낄 정도로 요즘 애들의 정서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송창식씨의 맨처음 고백이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맨 처음 고백이 몹씨도 힘들어서 1년 2년 그냥 흘려보내는 그런 정서를 이해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린 대단히 오래된 고리적 사람인가벼 싶다.
노래를 따라하면서, 흥이 오를대로 오른 난, 그것도 성에 안차서, 잠옷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원래 타고난 몸치다. 그래서 내가 출 수 있는 춤이란, 그저 음에 몸을 맡기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리듯, 그렇게 흐느적 흐느적 음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내가 출 수 있는 춤의 다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감히 춤을 추지 못한다. 안 추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워서 못 추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 집 거실에서 내 흥에 겨워서 춤을 춘다는데, 뭐 그런 것들이 대수이겠는가. 거기다가 송창식씨의 옛 노래들은 별루 빠른 템포가 없어서, 흐느적 스타일의 내 춤에 제격이기도 하다. 지나가던 아들이랑 남편도 한 번 씩 흘깃 쳐다보고는 그냥 간다. 어쩔 땐 혼자 흥에 겨워 주체를 못하는 나를 괜시리 건들여보고 싶은 남편이 ‘세수나 했냐” 물어서 흥을 깨기도 하지만, 겨울비 내리는 어느 일요일 아침에, 노래속에, 춤 속에, 제 흥에 겨워, 옛시절의 먼 추억속에 빠져들어 홍야 홍야 거리는 나의 이 순간이 문득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이런 행복은 바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Do it yourself 스타일의 작은 행복이니, 남편! 괜시리 행복해 하는 사람 무드 깨지 말고, 그냥 놔둬, 중얼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