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3, 2009

할머니와 내 남자친구 새

어릴 때 할머니 사투리가 너무 심하셔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시지 못하고 보통 때는 ‘갱이야’, 화가나면 ‘ 캥이야’ 하고 부르곤 하셨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내 이름을 이렇게 부르시는 것이 싫어서 슬슬 피해다녔던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주책이야 하면서..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내가 할머니를 주책이라고 했던 것에 대해 많이 후회했었다. 하얀 치마 저고리를 아주 단정하게 입으셨던 할머니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치마를 올리시고 고쟁이 속에서 체온에 약간 녹은 사탕이나 동전을 꺼내 주시던 생각이 나면 아직도 내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그 많은 나이에도 울 할머니는 허리가 굽지 않으셨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으셨던 것 같다. 종종 걸음으로 쫒아가던 나를 자꾸 뒤돌아 보시며 ‘얼른 얼른 와’ 하시면서 손짓하시던 모습도 그립다. 늘 오빠만 더 이뻐한다고 ‘할머니 미워’ 하던 나를 보시며 웃으시던 할머니. 할머니! 정말 보고 싶어요!

그런데, 미국에 오니 미국 사람들이 내 이름을 ‘켱히’ 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미국 쏴~람들이 우리 할머니를 아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난 미국사람들이 내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것이 어릴 때 처럼 싫어서 내 이름의 첫 알파벳을 K를 사용하지 않고 G를 쓰는데도 여전히 자기들 마음대로 ㅋ 사운드를 내서 부른다. 거기다가 한국에서처럼 이름끝에 ‘야’를 붙이지 않고 이름을 부를려니 당연히 두 번 째 소리에 엑세트를 넣어서 더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미국에 뿌리를 박을 것이 확실해 진 후 닉네임 ‘Geni’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Geni’ 라고 부르기 때문에 ‘켱히’ 소리가 기억의 저쪽으로 슬슬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올 봄인가? 텃밭에서 일을 하는데, 어떤 새가“캥히~” 하고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 도데체 어떤 새가 이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야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난 이런 새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마치 할머니가 미국식 가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그런 소리.. 할머니가 미국새로 환생하셨나 하는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 귀에만 이렇게 들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아들에게 지나가는 우스개소리 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진짜 웃기는 것은 이 두 사람 귀에도 진짜 그렇게 들린단다. 어의가 없어서.. 그 후로 이 새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자친구 새’가 부른다고 빨리 나가 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자새면 어떡하라고…. 급기야는 심심할 때마다 두 사람이 휘파람으로 이 새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 했다. 한 번은 남편과 쇼핑을 갔다가 서로 떨어져서 찾지를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남편이 휘파람으로 이 소리를 냈다. 목소리보다 휘파람 소리가 더 멀리 퍼지고 찾기도 쉬운 것을 그 때 알았다. 지나던 사람들이 흘끗 흘끗 남편을 쳐다보았지만 날 찾았다는 기쁨에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제 울 남편은 나를 부를 때나 찾을 때면 아예 이렇게 휘파람으로 부른다. 할머니 주책없다고 놀려서 아마도 벌을 받나보다..

그 후로 도데체 어떤 새인가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 두 번 울타리 위에 앉아 있는 이 새를 본 것 같은데 참새보다는 약간 더 컸지만 그리 특별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내가 새들을 잘 모르니까.. 그래서 이렇게 슬쩍 본 것만으론 책에서 찾아내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던 것이 바로 어제 저녘이였다. 여느 때 처럼 나는 텃밭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얼마전 폭풍 (우리 George를 죽게 했던 바로 그 폭풍) 에 꺾였는데도 간당 간당하니 붙어서 말라버린 린든트리의 가지 위에 앉아서 어떤 새가 울고 있었다. 올려다 보니 하얀색의 배랑 까만색의 목이 눈에 띄었다. 지켜보니 trill에 가까운 chirping 사운드를 몇 번 냈다. 내 남자친구 새가 아닌가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바로 그 순간 “캥히~” 하고 울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잘 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이런 소리를 내기를 기다렸다. 몇 번 트릴 소리를 내 더니 또 한 번 “캥히~” 하고 울었다. 아! 바로 이새였구나 싶어서 얼른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서 첫 번 째 사진을 찍었지만 너무 멀었다.

줌으로 당겨서 다시 한 번 더 찍는데, 또 “캥히~” 하고 울었다. 너무나 평범했던 내 하루가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 더 찍을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냥 날라가버렸다. 아~ ~ ㅜ.ㅜ 내 남자친구 새여…

1시간 내에 우리는 Peterson Field Gudies의 Birds of estern and central north America (5th edition) 에서 위의 사진이랑 진짜 비슷한 새 그림을 찾아냈다. Dark-Eyed (“Oregon”) Junco 숫컷.

비슷하지 않나요? 일단 하얀색 배랑 까만 목과 머리랑 하얀 배 옆의 옅은 rusty 고동색이 특성이란다. 컴퓨터 사전에는 이 새의 트릴 소리만 녹음되어 있어서 다른 소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새는 주로 미국의 North West 쪽에 사는데 드물게 Central America 랑 East America 쪽으로 오기도 한단다. 내 남자 친구 새는 그러고 보니 그냥 평범한 새는 아니었다. 역시~ ^. ^ 하지만 Dark-Eyed Junco가 확실할려면 우리는 이 새의 꼬리를 보아야 한다. 이 새의 또 다른 특성이 꼬리에 하얀색 깃털이 양쪽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밑에서 올려다 보는 모습인데다가 꼬리랑 머리 뒷꼭지를 볼 수가 없어서 이 새가 그런 꼬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산책을 갔다가 또 이 새를 보았다. 그 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를... 내 남자 친구는 진정 한 놈이 아니었다. 담장 위에 앉아 있는 옆모습. 책 그림에선 보지 못했는데, 등 옆쪽으로 흰 줄무늬가 보인다. 흰 털들이 꼬리 양쪽으로 희끗 희끗 보이는 것도 같고.

말라빠진 나뭇 가지 위에 앉아있는 새를 아랫쪽에서 찍은 모습이다.

위나 옆에선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랫쪽에서 보니 꼬리양쪽으로 하얀 깃털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결정적인 증거... 날라갈 때 보니 확실히 햐얀 꼬리 깃털이 양쪽으로 선명하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숫컷Dark-Eyed (“Oregon”) Junco가 같은 종류의 암컷을 쫒아 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암컷은 등쪽의 깃털들이 검정색이 아니라 갈색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숫컷이 암컷을 쫒아다니면서 가끔 “캥히~” 하고 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암컷을 부르거나 꼬시는 소리중 하나 같다. 이렇게 해서 나를 봄 부터 꼬셔대던 새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내고 만것이다. 근데 누가 나 상 안주나… 장한일 해냈다구… ㅎㅎ

2 comments:

  1. Good job! You deserve a special award for persistence! What a timing to capture both male and female Juncos in the last photo....

    It must be wonderful to have so many secret admirers come to your place and call you:)....

    ReplyDelete
  2. 이름을 알게 되니 새의 신비가 약간 적어졌지만, 이 새가 아주 다양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게도 되었지요. 제가 생각해도 아주 끈질기게 추적한 것 같아요. 생각할 수록 재미있고 어이없어요...ㅎㅎ

    Reply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