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부터 슬슬 내린 눈들로 토요일 아침에 내다 보는 바깥 세상은 그저 하얗기만 합니다. 올 겨울, 가장 많이 내린 눈이랍니다.
텍사스를 강타하고, 오클라호마를 강타한 뒤 우리 지역에 다가 온 한파! 하루 전인 목요일날 부터 일기 예보관들이 엄청 겁을 주어서 이 지역 모든 학교들 모두 미리 금요일을 휴일로 선포하고, 소방수들까지 위기사황들에 대한 대비완료! 심지어는 대학까지 일찍 문을 닫고 덜덜 떨었건만, 그 무시무시할 줄 알았던 한파는 종이 호랑이 처럼, 2인치 정도의 눈만 밤새 살포시 내려주고 지나가고 있답니다. 아마도 여기 오기 전에 텍사스랑 오클라호마에서 너무 기세를 올렸는지, 아니면 스모키 산맥을 넘어오면서 힘들이 다 빠져버렸는지, 아니면 우리가 미리 겁먹고 있어서 좀 봐주었다가 조지아주를 공력할 작정인지…. 나야 그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온 지역을 괜스리 덜덜 떨게 했던 일기예보관들이 너무나 송구스런 마음에, 아마도 접시물에 코를 박지 않을까 몹시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녘에 꼭 일기예보를 지켜보아야지….일기예보관들이 미안하다고 시인할 지 아니면, 은근히 묻어버릴지, 그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아침부터 정신나간 사람마냐 실실 쪼개고 있는 내 마음을 그 누가 알려나?
앞문을 열고 밖을 내니, 앞 잔디밭을 가로지르면서 우체통까지 쭉 난 발자국들이 보입니다. 누구 것일까요?
제 아들은, 주말 아침 일어나자 마자 일어나서 맨처음 하는 것이 나가서 주말 신문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잠깨고 내려온 남편이 맨 먼저 물어 보는 것도, ‘신문 가져 왔냐? 하는 것이고. 그런데, 왜 발자국이 한 줄만 보이냐구요? 아니 이녀석이 올 땐 날라왔나? 아무 생각없이 덜깬 잠을 떨치고 나갔다가, 너무 추워서 큰 걸음으로 뛰어서 그랬나 봅니다.
엉터리 (?) 일기예보 덕분에 멀쩡한 금요일 하루를 딩굴 딩굴 놀았던 아들은 토요일 아침 식탁에 앉아서 느지막한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아들얼굴이 아주 느긋하게 하루를 잘 논 놈 처럼 보입니다. 일기예보에 겁났던지 바이올린 선생님까지 미리 전화해서, 늘 금요일 막바지를 장식하던 레슨까지 쉬었으니. 그럼 그렇지…울 아들, 멀쩡한 금요일날에 학교도 안 가고, ‘하루 잘 놀았았지 ? 하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대답하네요. 그나 저나 난 오늘 하루 무엇을 하지?
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에 뒤덮혀서 하얗습니다. 땅도 하얗고, 하늘도 하얗고, 포근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 추운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공원에 나가자니, 길이 너무 질척거릴 것 같고, 아들 표정을 보니, 오늘 아침은 썰매타러 갈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가든사진이나 찍자 하면서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텃밭은 눈으로 묻혀서, 보이는 것은 마늘잎들 뿐입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얼어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마늘들이 눈담요에 누어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땅에 딱 둘러붙어서 겨울을 나고 있는 근대는 끝만 간신히 보이고 있습니다.
와와……지난 밤의 내린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실나무는 잔뜩 꽃을 달고 있습니다.
혹시 꽃송이들이 얼어 붙지 않았나 싶어서 코를 바짝 들이 대고 들여다 보아도 아름다운 매실꽃들은 그저 쌩쌩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걱정해준 저에게 윙크를 날려주는 것 같기까지 합니다.
녹아 내리는 눈이 물이 되어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고 있는데, 제 눈이 멀만큼 이쁘기만 합니다. 정말 예쁘지 않나요? 이렇게 예쁜 분홍색 꽃들을 어디가서 본 적 있나요? 있으면 말구요….ㅎㅎㅎ
올 겨울 내내, 나의 Winter Blue를 없애줄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1월내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예쁜 분홍꽃들을 피워주고 있습니다. 잔뜩 달고 있는 꽃망울들과 꽃눈들을 보니, 3월까지 이렇게 꽃을 피워줄 것 같습니다. 심은 지 4년 차 되어가는 이 매실나무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꽃들을 피우고 있는데, 작년보단 올해 훨씬 더 많은 꽃들을 피어주고 있습니다. 아직 열매를 많이 달지는 않았지만, 한 겨울내내 피워주는 이 분홍꽃들만으로도, 저는 심은 보람을 뽀땃이 느끼고 있답니다.
삼매경에 빠진 나를, 뚱한 표정으로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집 귀염둥이 토끼, 덤보가, 가까이 다가가니, 반갑다고, 철망을 잡고 서서, 껑충껑충거립니다. 털옷을 두껍게 입었는지 별루 추운 기색은 안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물도 얼어 있지 않습니다.
귀를 자세히 보면 왜 이녀석 이름이 덤보인지 알 수 있어요. 아기 코끼리 덤보처럼, 엄청나게 귀가 길어서, 다른 토끼처럼, 귀를 쫑긋세울 수가 없답니다. 이 녀석은 야생에서 살면, 일착으로 잡혀먹힐 놈이죠. Pet shop에서 아기토끼로 사와서 쭉 조오지를 아빠 삼아서 잘 지내다가, 1년 지나서, 사춘기가 되었었는지, 아빠 토끼 조오지를 자꾸 물어서 피를 내는 바람에, 떨어져 살았는데, 이제 조오지를 잃고 혼자만 남았답니다. 덤보가 외로울까봐서, 아침 저녘으로 들여다 보는 아들을 보면서… 형제들이 없어서 늘 외로움을 타서 그런지, 덤보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토끼장 옆에 있는 키가 큰 Red Cedar Tree 위엔 한 무더기의 새들이 난리를 떨고 있습니다. 로빈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구. 야채들은 품종까지 따져 가면서 난리를 치지만, 새 이름들은 잘 몰라서, 웬만하면, 그저 다 새랍니다.
그나 저나 저눔의 새들이 내 나무 위에서 뭔 짓들을 하고 있는거야 싶어서, 나무 아래를 보니, 조그만 검정알 같은 것들이 잔뜩 떨어져 있습니다.
이그…새똥들인가 싶어서, 피할려다가 들여다 보니, 열매들입니다. 아…이걸 먹을려고 왔구나 싶습니다.
나중에 보니 내려와서 밑으로 내려와서 떨어진 열매들을 줏어먹고 있습니다.